2012/01/28 23:49

워 호스 (War Horse) / 극장이 그리워. Theatre Life

생각해보니 한동안 공연관련 포스팅을 전혀 안 했다. 
뼛속까지 연극인, 뼈극인이 내가 실질적인 무대디자인을 안 한지 근 2년이 넘어가는구나. 물론 메일을 통해 아이디어를 준다던가, 휘휘 휘저은 스케치를 디카로 찍어 보낸다던가 하는 건 했지만 극장 안에서 물리적으로 셋업을 한 게... 2009년 11월이 마지막이었다. 
지금까진 어찌 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울컥울컥 쯔나미로 밀려오는 극장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약하게 만든다. 
물론 궁극적으론 공연과 봉사를 접목한 까서방과 나만의 커뮤니티 극장을 만들 것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게다가 대학로 동지들이 으쌰으쌰 뭔가를 작당하는 소리가 바다 위를 달려 내 귀까지 들릴 때면 내 마음은 그저 당신(연극) 곁으로 어디든지 달려가고 싶을 뿐이다. 
   
2008년 '요거트를 찾아서' 작업 차 영국에 갔을 때 National Theatre의 War Horse를 보았다. 사실 줄거리로만 봤을 땐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않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무대 위에서 창조해낸 연극성이란... 내가 지금껏 보아온 공연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휼륭했다. 특히 마치 살아있는 말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드는 그들의 craftmanship은 가히 최고다. 
말이 죽은 걸 표현한 연출은 아직도 생각할 때마다 내 눈가에 눈물을 고이게 만든다. 말을 조절하는 3명의 퍼페티어들이 조용히 말틀에서 나와 나란히 서서 바닥에 누워있는 그 말틀을 가만히 쳐다보며 미소짓는다. 그리고 조용히 돌아서서 퇴장한다. 아주 단순한 단 3초의 동선이지만 그게 눈 앞에 형상화되었을 때의 그 감정은... 그건 마치 육체를 떠나가는 영혼을 손을 뻗어 붙잡고만 싶은 그런 것이었다. 

TED Talk에 나와 그동안의 노고를 설명하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스필버그가 영화로 만들어서 개봉을 했다 하는데, 보진 않았으나 공연보다 못 할 것이 뻔하다. 

연극이 그립다보니 옛날 기억까지 꺼내게 되네...
다시 극장에 설 그날까지... 나의 여행은 계속된다. 
까서방과 다시 다짐을 한다. 
꼭 우리의 극장을 만들자고. 


2012/01/25 02:30

'착한여행 디자인' 스을쩍~ 엿보기 2. Charity Travel


카밀과 노란오리의 세계자원봉사여행 채리티 트레블을 담은 책 '착한여행 디자인'!
오늘도 사알짝~ 보여드릴게요. 

 드디어 지붕 작업을 할 푼디 아저씨가 왔다. 난 지붕을 덮을 철판들을 칠한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으로 칠하려 했는데 윌리스가 사 온 페인트를 열어보니 내가 원했던 파란색이 아니다. 이 파란색으로는 녹색과 남색, 보라색을 만들 수가 없다. 다시 키수무까지 가서 사오기엔 너무 늦었고 돈도 없다. 그냥 가지고 있는 색으로 빨강, 주황, 노랑, 연두, 하늘색, 갈색, 흰색의 일곱 색을 만들기로 한다. 레인보우 센터 이름에 맞게 무지개색이어야 했는데, 많이 아쉽다.
 철판들을 잔디밭에 펼쳐 놓고 흰색으로 기본 코팅을 한 다음, 그 위에 두 번씩 색을 칠한다. 유성페인트를 사는 바람에 시너를 섞어 색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놈의 시너 냄새가 너무 독하다! 한 개, 두 개, 세 개, 철판에 색이 채워질수록 시너 냄새에 취한 나는 광년이처럼 잔디밭을 둥둥 떠다니며 페인트와 한바탕 논다.
 - 나는야 잭슨 폴록, 마구마구 페인트를 뿌려 줄 테닷! 으하하하핫!
 옆에서 청년들이 걱정스레 쳐다보며 “너 괜찮니?”하고 물어본다. 48개의 철판을 혼자 다 칠해야 하는데, 너라면 괜찮겠니? 어찌하여 붓을 들 줄 아는 인간이 한 명도 없단 말인가! 48개를 다 끝낼 즈음 나의 광년이 게이지는 극에 달하고 슬슬 사람들이 날 피하기 시작한다.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이유를 알 것 같다.
 - 아……. 이역만리에서 이렇게 힘들어 죽는구나. 내가 죽거들랑 시너 때문에 죽었다고 묘비에 써다오. 난 공산당보다 시너가 더 싫어요!
 누구에게 보일까 창피해 혼자 나무 뒤에 가서 징징 운다. 너무 힘들어.
 눈물을 훔치고 돌아오는데 나를 본 청년이 “저기 정신 나간 백인 여자 납신다!”고 놀린다. 그래, 시너 냄새를 그렇게 맡았으니 정신 나갈 만도 하지……. 잠깐, 그런데 방금 나보고 백인 여자라고 했니? 그러고 보니 윌리스도 그랬고, 벤도 그랬고, 나를 표현할 때 키 작은 White, 즉 백인이란 단어를 썼다.
 - 난 아시아인인데…….
 - 아시아건 어디건, 우리보다 덜 까만 사람은 다 백인이야.
 - 그럼 중동 사람은? 남미 사람은? 그 사람들도 다 백인이야?
 - 몰라. 만난 적이 있어야지.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들이 말하는 흑과 백의 이분법이 어색하다. 내가 백인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생각할 기회조차 없었기에 순간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타인의 눈에 보이는 내가 새삼스럽기도, 흥미롭기도 하지만 왠지 내 정체성이 백인으로 구별되는 것이 싫다. 내가 백인이라니? 난 자랑스런 아시아인이라고!

-- '착한여행 디자인' 중 126~128p

케냐에서 레인보우 센터를 지었을 때의 얘기입니다. 레인보우 센터에 대해선 이미 예전에 몇 번 얘기했었죠. 
아... 정말 힘들었었어요... 뭘 그걸 가지고 그러냐, 엄살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당하지 않으면 몰라요. 
이미 연극무대 바닥에서 '노가다'란 게 뭔지 충분히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우물 안 개구리 제 착각이었어요. 
하지만... 저 노가다는 그저 시작일 뿐이었으니... ^^

오늘의 책 선전은 여기까지. ^^
설날 잘 쉬셨어요? 연휴에도 못 쉬셨을 대한민국 모든 며느리들께 경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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